
성찬의 떡을 받기 위해 내민 손으로, 예배가 끝난 뒤에는 내 권리만 붙들 때가 있다. 같은 떡을 나누었다는 고백은 왜 서로를 배려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할까.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고린도전서 10장 설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성찬이 성도를 한 몸으로 묶고 서로를 섬길 책임으로 이끈다고 설명한다. 그 은혜를 이해하면 내가 무엇을 해도 되는지를 묻던 질문도, 내 자유로 누구의 믿음을 세울 수 있는지를 살피는 질문으로 깊어진다.
성찬의 의미, 한 떡에 참여하는 한 몸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에서 바울은 축복의 잔을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일로, 떼는 떡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일로 설명한다. 이어 많은 성도가 한 떡에 참여하기에 한 몸이라고 말한다. 성찬의 의미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고백이 함께 담겨 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같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부름받는다.
이 설교는 성찬을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에 영적으로 참여하는 은혜의 통로로 이해한다. 떡과 잔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의 몸과 피다. 성찬에 참여하며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일은, 그 대속적 사랑을 더욱 깊이 받아들이는 과정과 이어진다. 내가 받은 사랑을 헤아릴수록 함께 은혜를 받는 사람을 가볍게 대할 수 없게 된다.
한 몸이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서로를 위해 존재할 책임까지 품는다. 나의 신앙이 평안한지 살피는 것과 함께, 곁에 있는 사람이 믿음 안에서 살아가도록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알고도 내 일이 아니라며 지나치던 태도는 이 고백 앞에서 질문을 받는다. 함께 떡을 나누는 사람의 어려움이 내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을 섬기는 책임은 그리스도께 먼저 받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이 순서를 기억하면 신앙의 실천은 은혜에 응답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라난다. 같은 떡을 나눈다는 고백은 서로의 필요를 알아가고 그 필요 앞에서 자신의 시간과 힘을 나누는 삶을 향한다.
시험과 우상 앞에서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도 자신의 믿음을 과신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12~13절은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넘어짐을 조심하라고 권하면서, 하나님께서 시험 중에 피할 길을 내신다는 약속을 함께 들려준다. 은혜를 경험한 기억만으로 오늘의 유혹을 분별하는 수고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받은 은혜 속에서도 흔들렸다는 설교의 설명은, 신앙의 경험을 자기 확신으로 바꾸는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피할 길의 약속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도록 이끈다. 반복되는 타협을 알아차렸을 때 기도와 말씀으로 도움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방향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이 설교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과정에서 믿음이 성숙할 수 있다고 본다. 시험을 지나는 동안 내가 무엇을 믿고 서 있는지도 분명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삶을 지킨다는 질문은 우상 숭배의 문제로 이어진다.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에서 바울은 신전 제사에 참여하는 일을 귀신과의 교제로 경계한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면서 우상과도 연합하려는 선택에는 신앙의 중심을 흔드는 모순이 있다. 그 경고는 어떤 자리에 참석했는지만큼이나 누구에게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 경고를 돈과 성공, 쾌락과 미디어가 하나님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문제에 연결한다. 돈과 기술을 사용할 때 무엇을 좇게 되는지,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를 밀어내는지 살피는 것이다. 성취를 위해 신앙의 원칙을 거듭 미루거나, 화면 속 즐거움 때문에 말씀과 이웃을 위한 시간을 계속 내준다면 습관을 돌아볼 이유가 생긴다. 삶을 움직이는 기준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 일이다.
무엇을 줄일지 살피는 것과 함께, 주어진 도구를 어떤 목적에 사용할지도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진리와 사랑을 전하고 누군가를 돕는 소통에 참여하는 일은 설교가 제시하는 실천의 방향이다. 분별은 일상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돌리며 그 안에서 섬길 가능성을 찾도록 이끈다.
이 분별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기도하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을지 살피는 관계가 필요하다. 교회 역시 세상의 성공 기준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믿음은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우선순위에서 함께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누구의 믿음을 세우는가
우상 숭배를 피하라는 경고를 읽을 때, 신전 제사에 참여하는 행위와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먹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에서 바울은 먹을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살피도록 권한다. 같은 음식 문제라도 무엇에 참여하는지, 이웃의 양심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판단할 내용이 달라진다. 신앙의 분별에는 상황을 이해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바울이 말하는 유익과 덕은 자유를 사용할 방향을 알려 준다. 자신에게 허용된 행동이라는 판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돕고 공동체를 세우는지 살피게 한다. 성찬으로 한 몸임을 고백한 사람에게 이웃의 믿음은 내 자유와 별개로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유를 누리는 방식에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담겨야 한다.
가령 자신에게는 거리낌 없는 행동을 두고 누군가 신앙의 어려움을 말한다면, 먼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의 권리를 설명하는 데 서두르기보다 상대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그의 믿음에 유익이 되도록 누릴 수 있는 것을 기꺼이 절제하는 선택은 자유를 사랑으로 사용하는 한 방식이 된다. 내 선택으로 누가 도움을 받는지 묻는 순간, 판단의 중심에는 이웃의 삶도 들어온다.
그런데 행동만 양보하고 속으로 상대를 업신여긴다면 배려의 의미를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덕을 세운다는 것은 상대의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내적 태도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함께 자랄 때, 자유의 절제는 진심 어린 섬김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이 우리의 선택을 이끄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이 일상의 예배로
성찬에서 시작된 섬김은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함께 받은 은혜가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을 돌보며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내고, 필요한 도움을 공동체가 함께 마련하는 일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예배에서 고백한 사랑이 이웃의 실제 필요와 만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는 자신의 시간과 편의를 내어 주는 수고가 따른다. 곧바로 변화나 보람을 확인하기 어려운 때에는 부활의 소망이 주님을 따라 살아갈 힘과 위로가 된다. 설교가 함께 읽는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과 믿음의 핵심임을 일깨운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희생과 부활로 주어진 생명의 소망을 함께 붙들 때, 신앙은 오늘의 수고 속에서도 사랑의 방향을 지켜 갈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먹고 마시는 일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도록 권한다. 일상의 작은 선택도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으로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을 소비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며 어떤 말로 이웃을 대하는지 돌아보는 일이 예배의 고백과 연결된다.
설교가 로마서 12장 1절의 산 제사를 일상의 예배와 연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자신의 계획을 비추어 볼 기준을 받고, 성찬에서는 그 말씀에 응답할 사랑의 근거를 되새긴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고백이 실제 삶에 새겨지려면, 익숙한 우선순위와 이미 정해 둔 결정도 말씀 앞에서 다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성찬에서 받은 사랑을 떠올리며 오늘의 일정과 선택을 바라볼 수 있다. 미루어 둔 돌봄에 시간을 내거나, 자신의 편의를 조금 덜어 누군가의 믿음을 돕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내게 허락된 자유가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쓰이는지 묻는 작은 멈춤이 필요하다. 성찬의 떡을 받기 위해 내밀었던 내 손은 오늘 누구의 필요를 향해 펴지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